햇살 좋은 오후, 혹은 퇴근길 저녁, 우리는 종종 홀린 듯 서점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특히 광화문 교보문고처럼 넓고 쾌적한 공간은 단순히 책을 사는 곳 이상의 의미를 지니죠. 은은한 종이 냄새와 커피 향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가 꽂힌 서가를 천천히 거니는 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자 휴식이 됩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설렘, 표지를 쓸어보고 첫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의 기쁨은 온라인 쇼핑으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교보문고에 와서 직접 책을 만져보고, 내용을 훑어보며 구매할 책을 신중하게 고릅니다. 디자인이 예쁜 책, 두께가 마음에 드는 책, 우연히 눈길이 간 낯선 작가의 책까지… 오프라인 서점은 이렇게 예기치 않은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둘러보며 ‘이 책이다!’ 싶은 순간,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듭니다. 왜일까요?
바로 '가격 비교' 때문입니다. 똑같은 책인데, 이상하게도 온라인 서점에서는 몇 퍼센트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무료 배송 혜택까지 따라오죠. 소비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같은 책이라면 조금이라도 더 싼 곳에서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여기서 교보문고의 깊은 고민이 시작됩니다. 고객들은 분명 교보문고라는 공간을 사랑하고, 이곳에서 책을 발견하는 경험을 즐깁니다. 하지만 막상 ‘구매’라는 최종 단계에서는 더 저렴한 온라인 서점으로 발길을 돌리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것이죠. 마치 정성껏 차려놓은 진수성찬을 눈앞에 두고, 더 싸다는 이유로 옆집 백반집으로 향하는 손님을 보는 심정이랄까요? 사람들은 교보문고 매장을 마치 '쇼룸(Showroom)'처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보고 만져보며 어떤 책을 살지 결정한 뒤, 실제 주문은 Yes24나 알라딘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하는 패턴이 굳어진 것입니다.
교보문고 직원들은 매장에서 책 제목이나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을 스마트폰으로 찍어가는 고객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했습니다. "아, 저분도 온라인에서 사시려나 보다…" 하는 씁쓸한 예감이 들 때가 많았죠. 오프라인 매장은 높은 임대료와 관리비, 인건비 등 고정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온라인 서점과 동일한 수준의 할인율을 적용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손님들이 경쟁사 온라인몰로 빠져나가는 것을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교보문고 내부에서는 수많은 고민과 회의가 거듭되었습니다. "온라인과 가격을 똑같이 맞출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매장의 매력을 포기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 속에서, 누군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잠깐만요,
고객들이 우리 매장에서 책을 보고
다른 온라인 서점에서 산다고요?
그렇다면…
우리 교보문고 온라인몰에서
주문하게 하고,
그 책을 바로
이 자리에서 가져가게 하면 어떨까요?
이것이 바로 '바로드림' 서비스의 시작이었습니다. 발상의 전환이었죠. 고객들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오프라인 서점에서의 즐거운 '탐색 경험'. 둘째, 온라인 서점의 '저렴한 가격'. 바로드림은 이 두 가지 니즈를 절묘하게 결합한 해결책이었습니다.
"네, 고객님! 지금 보고 계신 그 책, 저희 교보문고 온라인몰에서 더 저렴하게 주문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문하신 후에 번거롭게 택배 기다리실 필요 없이, 지금 바로 여기서 찾아가세요!"
이 얼마나 솔깃한 제안인가요? 고객은 여전히 교보문고 매장에서 직접 책을 고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책을 찾으면,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으로 교보문고 앱이나 웹사이트에 접속해 '바로드림'으로 주문합니다. 온라인 할인가가 적용되니 가격 부담도 덜 수 있죠. 주문 완료 후 몇 분만 기다리면, 매장 내 지정된 '바로드림 존'에서 방금 주문한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바로 수령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고도 가격 때문에 망설이거나, 온라인 주문 후 며칠씩 배송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교보문고 입장에서도 고객을 경쟁 온라인 서점에 빼앗기지 않고, 자사 온라인몰 매출 증대와 오프라인 매장 방문 유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묘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혹은 "오프라인 매장의 정체성이 흐려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변화하는 소비 트렌드와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교보문고는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혁신을 선택했습니다. '바로드림'은 그렇게, 오프라인 서점의 낭만과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 사이에서 탄생한, 시대의 요구에 대한 교보문고의 영리한 대답이었던 셈입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보문고에서 책을 고르고, 스마트폰으로 바로드림 주문을 한 뒤, 잠시 기다렸다가 책을 찾아 나섭니다. 서점에서의 즐거운 경험과 합리적인 소비, 그리고 즉각적인 만족감까지 모두 얻게 된 것이죠. 어찌 보면 조금은 복잡해 보이는 이 과정 속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고객과 함께 호흡하려는 한 서점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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